인과관계에 관한 보조자료 (소피의 세계에서 발췌)

그럼 계속 흄의 경험철학의 핵심을 파악해 보자. 흄은 그 아기가 아직 자기 기대에 사로잡힌 노예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겠지. 따라서 어린 아이는 소피 너보다 선입견을 덜 가지고 있는 거야. 우리는 아기가 가장 위대한 철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아기에게는 아무런 선입견이 없으니까 말이다. 소피야, 바로 이것이 철학의 첫째 덕목이다. 아기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느끼지. 자기가 경험하는 것 이상의 사물에 얽매이는 일이 없이 말이다.

제가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다니, 유감스런 일이에요.

흄은 습관의 힘을 논할 때, 특히 인과 법칙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인과 법칙이란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꼭 원인이 있음을 뜻한다. 흄은 당구공 둘을 가지고 설명했다. 네가 검은 공을, 정지해있는 흰 공 쪽으로 굴리면 흰 공이 어떻게 될까?

움직이겠죠.

왜 움직이지?

검은 공이 맞추었으니까요.

이 경우 우리는 검은 공의 타격을 가리켜 흰 공을 움직이게 한 원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우리가 경험한 것을 언제나 엄밀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저도 이미 여러 번 경험했어요. 요룬이네 집 지하실에 당구대가 있거든요.

그런데 흄의 말은, 너는 단지 검은 공이 흰 공을 때렸다는 사실과 흰 공이 당구대 위에서 구른다는 사실만을 경험했다는 거란다. 곧 흰 공을 구르게 한 원인 자체는 경험하지 못한 셈이지. 너는 시간적으로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에 뒤이어 일어났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두 번째 사건이 첫 번째 사건에 근거해서 일어났다는 것을 경험한 것은 아니다.

그건 좀 억지가 아닌가요?

아니 아주 중요한 말이다. 흄은, 한 사건이 다른 사건에 이어서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의식 속에 들어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 당구공이 다른 당구공을 맞혔는데도 둘 다 가만히 멈춰 설 경우, 아기라면 이를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지 않을 테지. 우리가 ‘자연 법칙’이나 원인과 결과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실은 인간적 습관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 법칙이란 이성적인 것도 아니고 비이성적인 것도 아니다. 자연 법칙이란 그냥 있는 것이다. 검은 공이 흰 공을 맞히면 흰 공이 움직이리라는 기대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세계가 어떻고, 세상의 사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관해 아무런 관심도 기대도 갖지 않고 태어난다. 세계는 늘 있는 그대로일 뿐이고, 우리는 그것을 차례차례 경험해 나가는 거야.

그것 역시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요.

우리의 기대가 우리로 하여금 성급한 결론을 내리도록 유혹할 경우에는 그게 중요할 수도 있지. 흄은 변치 않는 자연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자연 법칙 자체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잘못된 결론을 내릴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지.

몇 가지 예를 들어 주시겠어요?

내가 검은 말 한 떼를 본다는 사실이, 모든 말이 검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

물론이죠.

심지어 내가 평생 동안 새까만 까마귀들만 본다고 해도, 그것이 하얀 까마귀가 없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철학자나 과학자에게는 하얀 까마귀의 존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어쩌면 하얀 까마귀 사냥이 과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알겠어요.

다시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많은 사람들은 번개가 천둥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왜냐하면 늘 번개가 친 다음에 천둥소리가 들리니까. 이것은 당구공의 예와 그리 다리지 않다. 그런데 과연 번개가 천둥의 원인일까?

아뇨, 그렇지 않아요. 번개와 천둥은 정확히 동시에 일어나요.

번개와 천둥은 단일한 방전 작용이기 때문이지. 우리가 언제나 천둥이 번개 다음에 울리는 것을 체험한다 해도, 그것이 번개가 천둥의 원인이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실제로는 제 3의 요인이 이 둘을 유발하지.

맞아요.

20세기의 경험주의자 버트란드 러셀은 좀더 섬뜩한 예를 들었다. 닭 주인이 뜰을 지나가면 모이가 생긴다는 사실을 날마다 체험한 병아리가 마침내, 닭 주인이 뜰을 지나가는 것과 그릇에 든 모이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는 거야.

그러다가 어느 날 모이를 못 얻어먹게 되나요?

어느 날 닭 주인이 뜰을 지나와서 그 놈의 목을 비틀었지 뭐니.

어머, 끔찍해라!

그러니까 시간적으로 뒤따라 생기는 사건들 사이에 꼭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야.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람들이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지 않도록 경고하는 일이야. 특히 성급한 결론은 여러 가지 미신을 유발한다.

어떻게요?

네가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거리를 달려가는 걸 보았다. 잠시 후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네 팔이 부러졌다고 하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두 사건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 더구나 학문에서 인과 관계를 연구할 때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어떤 약을 먹고 건강해졌다고 해서, 그 약이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그래서 우리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 약과 똑같이 생겼지만 실은 밀가루와 물로 만든 약을 먹게 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자기들도 똑같은 약을 먹는 다고 생각하며 약을 먹는다. 그리고 이 사람들도 건강해진다면 그들을 건강하게 만든 제3의 요인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예를 들어 이 약의 효과에 대한 믿음 말이야.

by 코나 | 2005/01/29 04:12 | 보관용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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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DESERTFISH at 2005/08/16 21:19
흥미로운 글이군요. 나중에 한번 사서 읽어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코나 at 2005/08/17 22:01
DESERTFISH//그냥 교양서적으로 읽을 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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