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관계에 대한 생각

모든 학문은 인과관계를 전제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문 이라는 것은 의미를 잃는다. 학문은 사건들 속에서 어떤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 법칙이란 대부분 어떠한 조건과 그에 따른 결과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조건(원인)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당연히 어떤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인과 관계란 있는 것일까?
사실 학문 중에서 가장 큰 예측 가능성을 자랑하는 과학의 법칙 역시 인과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그 위치를 고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과관계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이 자연법칙이든 아니면 인문과학에서 제시되는 법칙이든, 그 법칙이 인과로부터 도출되는 결과인지 아니면 단순한 습관일 뿐인지(닭 주인이 뜰을 지나가면 모이가 생긴다는 사실을 날마다 체험한 병아리는 마침내 닭 주인이 뜰을 지나가는 것과 그릇에 든 모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지만 닭 주인은 어느 날 뜰을 지나와서 닭의 목을 비틀었다.)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우선 인과관계에 자체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으므로(인과관계가 당연히 존재한다고 가정하였으므로), 그것이 인과관계를 가지는지 가지지 않는지에 대한 평가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안에서만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더러 인과관계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역시 밝힐 수 없다.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인과관계가 존재하는지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과관계를 가정한다고 하는 것은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세상 내부에는 우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인과관계를 무한히 소급시키면 어떤 현상 이 발생한 원인을 그 현상을 발생하게 만든 존재를 그 원인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나의 부모가 나를 낳았기 때문이고 나의 부모의 부모가 나의 부모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식의 소급을 극한으로 진행 할 때 그 끝에 있는 것이 단수건 다수건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차피 모든 것은 인과관계 안에 포함시킬 수 있으므로. 그런데 이런 식의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순간 또 문제가 생긴다. 이런 식의 전제는 세상을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 인간의 역할은 사라진다. 말하자면, 유영철이 사람을 얼마나 죽였건 간에, 그것은 그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인과의 법칙을 따른다면 그가 사람을 죽인 행위 역시 인과의 법칙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이며 따라서 그의 자유의지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인과관계를 가정하면 위와 같은 문제가 생기고, 인과관계를 가정하지 않는다면 인과관계가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조차 밝힐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묻지는 말아다오. 나도 모른다.

by 코나 | 2005/01/29 05:05 | 보관용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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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istory at 2005/01/29 20:56

제목 : 포기할 것인가
인과율의 세계를 부정했던 자들이 있다. 인간의 고독은 자유의지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 고독하다는 것은 세상을 자신의 힘으로 창조할 수 있다는 독립선언이며, 그런 의미에서 앙가주망이다. 이카루스가 날개짓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멈추기 싫었기 때문이 아닐까....more

Commented by 悟汪 at 2005/01/30 23:13
갈구다니. 와서 변명조로 쓴 글이나 읽으면서 즐기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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