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도전

 

 




 

책을 읽고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던 책입니다. 많은 이야기가 거리가 있겠지만 제가 읽는 내내 중점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1)남성과 여성이 공존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 그리고 2)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로 요약해볼 수 있겠습니다.

 

1) 여성이 세상에서 타자가 아닌 주체로서 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획득하기 효율적으로 합리적으로 획득하기 위해서 택해야 하는 기본적인 노선에 공존의 필요성이 포함될 필요가 있을 것인가 에 대해서 생각해 봤을 때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노선에 과연 그것이 필요한지는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여성이 주체로서 존재할 수 없는 이유는 남성이 여성을 타자화 하여 착취하기 하기 때문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남성이 여성을 착취하고 있다는 인식(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과 지금까지 여성을 착취함으로써 얻어온 이득을 포기하겠다는 자발적인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성은 현재 누려온 이득에 대한 반성이 없으며 혹 반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남성이 되기 위해서 자신이 누려온 이득을 포기 하는데 본능적인 거부감(즉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남성은 외부의 자극 없이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남성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외부의 기준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자신의 행동을 검열 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은 남성 스스로를 분열 시켜 스스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부차적인 에너지를 사용하게 만들며 그러한 피곤함을 의지적으로 멈추지 않는 것은 매우 쉽지 않은 일입니다.

 

2) 결국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않는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라고 생각해야 하며 다음으로 자신의 어떤 행위가 다른 누군가를 소외시키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매우 복잡합니다. 먼저, 스스로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타인을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당위로 작용할까요? 혹시 그것이 당위로 작용한다고 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습니다. 자신이 행위가 누군가를 소외시킨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이미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실은 소외 당한 누군가가 소외시킨 누군가에게 말해줄 때 알 수 있는 것인데(자신이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있다는 그것이 의도적인 것이 아닌 이상 다른 누군가가 말해주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말은 결국 자신이 누군가를 소외시켰다고 알게 되었을 때 이미 누군가는 소외되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논리가 내가 누구를 소외시키는지 알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것은 해쳐나가야 할 상황이며 그 상황이 딜레마적 상황인 것일 뿐입니다.

 

ps : 정리하고 나니 오직 회의적인 글이 되어버렸는데,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의미 없음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좀더 확실한 디딜 곳을 찾기 위해서 입니다.

 




 

by 코나 | 2009/05/11 00:18 | 보관용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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