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여성주의라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문제다. 주위에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구린” 남성의 실제 그대로의 “구림”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온 것이 너무 많아서 일 런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나도 그 범위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것 같지는 않다.

생각해 보았을 때 나의 분명히 무의식은 확실히 여성주의를 싫어한다. 예를 들자면, 성폭력에 대한 법이 개정되어 정신과 의사의 증언이 증거로 작용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내가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예외 없이 그 법이 악용될 수 있는 경우를 머릿속에서 열심히 검색하고 있다. 여성의 노동(혹은 직업 활동. 물론 이 이야기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꼭 나의 무의식은 이렇게 생각한다. “여성들이 가사노동(집!안!일!)을 하면서 자아를 실현할 수는 없을까?” (물론 이 생각은 아주 어렸을 때 했었던 것이라 노동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고 또 자아실현이라는 낯간지러운 윤리교과서식 말만이 머릿속에 들어있을 때라 매우 유치하기 짝이 없긴 하지만 아무튼 부정적 인식이라는 데에 주목하자.) 지금은 그리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또 개울님의 글([책]섹시즘(Sexism), 남자들에 갇힌 여자 by 개울) 을 읽고 이런 식 으로 생각하고 덧글을 단다.

“새로운 말을 만드는 데는 어떤 주의가 필요할까요? 그것이 의성 의태어가 아닌 이상 기존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공유할 것이고 그렇다면 새로 만들어진 언어 역시 분명한 한계를 가진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의 정치적인 입장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쓰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만, 위에서 말한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머릿속에서 나오질 않네요. 언어에 대해 생각하고 언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는 것이 그에 대한 해답일 것입니다만, 어디까지가 새로운 방식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선행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T-T 물론 소개하신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덧글은 역시 매우 위험합니다;”

분명히 어떤 검열을 거친 말이며, 검열을 거치기 전에는 좀더 원색적인 반발이 들어나는 덧글이었으리라.

나의 무의식은 끊임없이 여성주의를 거부한다. 사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여성 여성주의자들이 남성 여성주의자들을 그다지 신용하지 않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다. 남성이 과연 여성주의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내 스스로를 관찰해본 바에 의하면 그리 가능성 높은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받아온 교육과 자신이 처한 환경으로부터 그리 쉽게 벗어날 수 없다. (남성이 여성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남성에게 주어진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며 또한 남성의 삶을 불리하게 만든다는 인식은 매우 무의식적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그 기득권이라는 것은 결국 허위일 뿐이며 또, 그 “포기”라고 불리는 것으로 인해 남성은 더 자유로워 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은 계속 그것을 거부한다.)

그렇다고 여성주의를 포기할 것인가? 그건 아니다. 여성주의는 대부분 옳으며 특히 한국사회에서 더욱 옳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면 당연히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 물론 나는 아마 여성주의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만 계속 여성주의자이길 바라고 그것을 추구하고 노력하고 계속 괴로워해야 한다. 그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위치를 어느 순간 어느 곳에 고정시키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구림”이다.

ps : 개울//그 덧글을 비공개로 했던 것은 이런 의미였어요. 쩝.
ps' : 일단 그동안의 무수한 비공개 글들 중 하나를 고쳐서 올려봤습니다. 흐음.

by 코나 | 2005/03/16 23:16 | 보관용 | 트랙백(1) | 덧글(8)

트랙백 주소 : http://kona.egloos.com/tb/108056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re-presentat.. at 2005/03/17 09:50

제목 : 여성주의, 그리고 연대
좀 뒷북치는 감이 있지만, 내친김에 트랙백. ^^ 여성들이 모인다는 것은. - 달군 고백 - 알엠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 ‘생존’을 위한 선택 - 붉은사랑 언니들의 블로그 - 노바리 대학에 갓 입학했던 새내기 시절, 나에게 대학은 문화 충격 그 자체였다. 나는 초, 중, 고등학교 시절 내내 공학, 그것도 합반인 학교에 다녔고, 대학교 또한 공학이었지만, 내가 다닌 대학교의 문화는 그때까지 내가 다녔던 공학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돌이켜보면, 공학이 아니라 거의 남대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more

Commented by happyalo at 2005/03/17 05:58
솔직한, 정직한 글이군요.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그걸 출발점으로 삼아 더 나은 나를 만들려고 하는 것, 그게 결국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Commented by 개울 at 2005/03/17 09:48
호홋, 저 덧글이 반발이었어요? 몰랐는데~ ^^
happyalo님 말씀처럼, 앞으로 얼마나 노력하고 얼마나 그 노력하는 자세를 유지해 나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그리고 아무리 봐도 남성우월주의자인데 "나는 남녀평등주의자" 내지는 "여성주의자예요" 하면서 이상한 글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보단, 자신의 현 상태를 볼 줄 아는 사람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정체성의 분열과 갈등이 여성주의의 시작이지요~ 앞으로 "구림"이 되나 안 되나 지켜봐야겠네요~ 히힛. :p
Commented by 개울 at 2005/03/17 09:52
글구 트랙백 받은 제 글 중에, 여기 링크 안 걸린 거 하나만 트랙백 보냈어요~
Commented by 코나 at 2005/03/17 11:37
happyalo//솔직하고, 정직한지는 알아낼 길이 없으니 말을 아끼도록 하죠 ^-^;;
개울//저도 가끔 제 자신에게 오바하는게 아닌가 라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적어도 반발인지 아닌지를 의심할 때 반발이라고 먼저 의심해보는 쪽이 이성적이지 않은가 싶어요. 구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Commented by 월덴지기 at 2005/03/17 18:06
트랙백타고 개울님 블로그에서 넘어왔습니다. 자신을 무엇으로 규정하는가를 다른 사람에게 알아달라는 듯이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 그 반대인 경우가 많지요. 최소한 제 경험으로는 그렇습니다. 진정한 남성 여성주의자(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라면 떠벌리고 다닐 시간에 행동하지 않을까요? ^^
Commented by 코나 at 2005/03/17 18:17
웰덴지기//맞는 말씀이십니다. 신념은 오직 행동으로만 증명되는 것이죠.
Commented by 파타고니아 at 2005/03/25 14:11
여성주의라는 말 자체에서 남성중심의 뭔가가 보이지 않나요? 핳핳. 이런 저런 말들 모조리 사라지게 된 때가 바로 진정한 여성주의 실현의 날이 되겠죠.
근데, 정말 오랜만이에요. :)
Commented by 은하 at 2005/04/20 17:01
스스로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공감가네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